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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의 신판에서 업의 소멸로…이생과 저승의 업경대 - 원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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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봉원사 댓글 0건 조회 3,513회 작성일 14-03-0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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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라대왕은 저승으로 사람을 불러들여 살아서 행한 일을 심판하는 왕이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고 착한 일을 한 사람은 극락세계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염라대왕 앞에 불려오는 사람마다 하나같이 살아서 자신들 이 선행은 많이 하였지만 나쁜 짓을 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염라대왕에게는 전생을 비춰보는 업경대라는 거울이 있어 그 앞에 서기만 하면 누구든지 한 평생 어떻게 살아왔는지 환히 볼 수 있는 거울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비구니스님 한분이 염라대왕 앞에 왔는데 이상 하게도 옷을 입지 않은 알몸 이었다. 염라대왕이 해괴한 모습에,
  “어찌하여 그대는 옷을 입지 않고 왔는고?”
  스님은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대답을 피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소리를 지르며,
  “어찌하여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그냥 왔냐니까?”하고 호통을 치자,
  “아뢰옵기 부끄럽사오나 소승은 욕심이 없어 옷 한 벌 없이 벗은 몸으로 왔습니다.”
  “아무리 욕심이 없어도 정도가 있지.......”
  “여봐라! 저 여승에게 필시 무슨 곡절이 있는듯 하니 업경대를 비추어 보거라.”

  대왕의 명에 따라 업경대를 비추어보자 엄동설한에 헐벗고 굶주린 여자가 아기를 안고 떨고 있는 것을 발견한 비구니스님이 자신의 승복을 벗어 여인에게 입히고 속옷은 어린 아이를 덮어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여인이 “스님 감사 합니다. 이 고마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좋을 지요?”라면서 흐느끼며 고마워했다. 이 광경을 본 염라대왕,
  “허허 그러면 그렇지 승려의 몸으로 곡절 없이 옷도 입지 않고 그냥 왔을 리가 만무하지 ”하시며“ 엄동설한에 자신의 옷까지 벗어 걸인에게 보시한 이 여승에게 비단옷을 입히고 음악을 울리며 아미타불이 계시는 곳으로 모셔라!”하여 극락으로 왕생 하였다.

  업이란 사람이 하는 행위를 두고 하는 말로 범어 까르마(karma)를 번역한 말이다. 사람이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그 행위의 에너지가 어딘가에 쌓이게 된다는 것으로, 이 에너지에 의해 일어나는 힘을 업력이라 한다. 중생이 살아가는데 있어 이 업이 삶을 영위하는 동력이 된다.

  이 업을 도덕적인 성질로 구분하여 선업과 악업으로 나누며 다시 이 업의 성질에서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식물이 종자에 따라 제 싹이 나는 것처럼 업이 종자가 되어 그에 상응하는 과보가 온다는 말이다. 이른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인과가 일치된다는 말이다.

  또한 사람의 행위는 세 가지로 구분되어 신체적 행위를 신업(身業)이라 하고 언어적 행위를 구업(口業)이라 하며 사고적 행위를 의업(意業)이라 하여 이를 삼업이라 말하기도 한다. 의업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을 뜻하는 말인데 불교에서는 생각도 하나의 행위로 본다. 이 업이 모두 행위의 당사자가 상속받아야 할 업감(業感)을 만들어 이것만이 영원히 업을 지은 자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업은 영원한 자기 소유가 되어 세세생생을 함께 하게 된다. 따라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내 업 밖에 없다. 내 몸도 영원히 내가 가지고 있을 물건이 되지 못하며 내가 소유한 재산이나 기타 소유품도 영원한 내 것이 못된다.

  인간의 한 생애는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생활 속의 하루의 시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이 내 한 생애의 전부가 아니듯이 금생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전생, 금생, 내생으로 이어지는 생이 세세생생 다겁다생으로 계속된다, 하고 이것이 계속되지 않게 하는 것을 윤회를 끊는다 한다. 이것이 불교 수행의 목적이다. 해탈이나 열반으로 설명되는 수행이 완성된 경지는 윤회를 벗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윤회를 하는 것은 업에 의한 과보가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 과보가 가장 고통스러운 곳이 지옥이다. 살생의 업을 많이 짓거나 반윤리적인 행위를 많이 한 사람은 다음 생의 과보가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한다. 때문에 사람은 언제 나 자기의 업을 살피고 살아야 한다. 중생이 사바세계에 태어나 살고 있는 것은 업을 짓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짓는 업이

  좋은 업인가 나쁜 업인가를 살펴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업경대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경전에서 말하는 업경대는 저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현실속의 ‘업경대’ 는 바로 내 가슴이요, 나의 양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마다 매일 대하는 방안의 거울이 업경대라는 생각을 가지고 외모만을 비춰 볼 것이 아니라 나의행동 나의 마음을 비쳐봐야 한다. 그래야 뿌린 씨앗에서 좋은 열매를 얻고, 지은 행동 모두가 밝고 복된 삶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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