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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회 영산재 국제학술세미나에 즈음하여 - 옥천범음대 학장 원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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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봉원사 댓글 0건 조회 3,185회 작성일 12-09-2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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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50호 영산재의 전통성과 학술적 기반 마련을 위해 시작 된
'영산재 세미나'가 어느 덧 10회를 맞이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봉원사 선조사 스님들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던 영산재는 지난 1969년 옥천범음회를 시작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했으며,
오늘 날 옥천범음대학이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지난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영산재 보존회는 옥천범음대학과 더불어 영산재의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며
그 원형을 더욱 공고히 하고 후학 양성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 성과로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를 넘어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 등재라는 쾌거를 이룩했으며, 이스라엘 등
수 많은 해외 공연을 통해 '영산재'라는 '아이콘'을 세계인의 문화코드에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영산재의 역사를 읽다보면 영산재는 신라시대 이후 구전으로 전승되어온 것이라 전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전수 과정은 매우 지난하며 그 전통의 맥을 고스란히 이어가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신라시대 '각필 악보'가 발견되면서 체계적이고 기록적인 문화의 맥을 이어가고자 하는 요구가 대두되었고, 그 바람은
'영산재 세미나'로 이어졌으며 10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 규모가 더욱 커져 '영산재 국제 학술 세미나'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산재 국제학술 세미나'는 역사와 전통에 근간을 하며 학술적 기반 마련이라는 중차대한 의미를 가치뿐만 아니라 훌륭한 전승문화로서의 일면을 보여주고 잇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영산재는 참으로 어려운 시간들을 관통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 합니다.
선좃 스님들로부터 구전으로서 전해 내려오던 영산재는 그 연원이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신라시대 진감선사가 당나라에 선법을 배우러 갔다가 어산(魚山)을 배워 귀국 후 발전시켰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범음범패와 바라무, 작법무가 곁들어지고 고려말 이래 수륙재, 예수재, 천도재 등에 핵심 의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나라가 어려울 때는 국가적으로 영산재를 지내며 국난을 헤쳐 나갔습니다.
그러나 조선조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으로 인하여 이 땅의 불교가 위축되엇으며 영산재 또한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영산재는 조선중기 또 다시 활성화가 되었으며
조선말 뜻있는 스님들에 의하여 봉원사에 안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조선말 어수선한 국가 사정 탓을 백성들이 영산재에 큰 관심을 보이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영산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한다는 일념으로 전승되어 왔으며,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불교 최고 의식이었던 영산재는 폐지의 위기에 몰리게 됩닌다.
당시 영산재를 못 마땅히 여겼던 일제는 '사찰법'까지 개정해가며 범음범패 등 어산 공연법회를 금지하게 됩니다.
 
일제의 영산재 탄압의 저변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불교의 성격이 강했던 불교계가 항일운동을 전개했다는
이유가 그것인데, 불교 종교식이 금지된 시국이었던 바, 영산재는 그 존폐의 기로에 섰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얿던 시기를 지나가면서도 송암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해방 이후에 많은 자료조사와 사료 등을 통해 영산재의 원형을 복구하고자 노력하였으며, 1969년 지금의 옥천범음대학의 전신인 '옥천 범음회'의 탄생은 영산재의 부흥기를 예고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중들로부터 너무 멀어졌던 영산재가 다시 대중 곁으로 다가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옥천 범음회는 서두르지 않으며 영산재의 원형을 찾아 하나하나 의식의 이음새를 복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첨가하여 후학을 길러냈습니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영산재는 1973년 국가 중요무현문화재 제 50호로 인정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 등재의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물론 지금의 화려한 영산재의 위상은 자랑할 만한 우리의 자산이지만 지난 1천여 년 간 봉원사에서 구전으로 계승되며
많은 어려움 끝에 태어난 불교의식의 정수인 것입니다.
 
이제 영산재는 불교의식이란 수식어를 넘어 한국의 전통문화로서 자리 잡았으며
세계적으로도 보존되어야 할 문화유산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 10회 영산재 국제학술 세미나'를 깊은 감횔 개최 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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