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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 별로 만든 이 국자는 바닷물 전체를 담고도 남는다

입력 2023. 11. 07   15:33
업데이트 2023. 11. 0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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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통신 - 북두칠성의 크기 

신비로운 힘 지닌 신령처럼 여긴 별

고려시대에도 ‘칠성님’ 섬기는 풍습
7개 중 1개 떨어진 곳 ‘낙성대’ 명명
‘관동별곡’에 술 푸는 국자 묘사 운치
실제론 두 별 사이 거리만 수백조㎞



예로부터 한국에서 사용하던 별자리 중 지금까지 친숙하게 가장 잘 알려진 별자리 하나만 꼽아 보면 역시 북두칠성이다. 북두칠성은 한반도에서 밤하늘을 보면 언제나 북쪽 방향인 북극성 근처에서 계절과 관계없이 항상 볼 수 있는 7개의 별로, 흔히 국자 모양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이는 큰곰자리의 곰 꼬리와 엉덩이 부분에 해당한다.

북두칠성을 이루는 7개의 별은 다들 잘 보이는 별이어서 우리 눈에 잘 띈다. 게다가 밤하늘의 별들이 뜨고 지는 중심인 북극성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게 됐다. 고대 그리스신화에선 제우스가 칼리스토라는 여성을 좋아하자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가 그녀를 곰으로 만들어 버린 이후 칼리스토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별자리가 됐다고 이야기한다. 헤라의 질투심 때문에 물도 못 마시게 했는데 큰곰자리, 북두칠성을 바닷가에서 보면 어느 계절이나 바다 위 높은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이다.

눈에 잘 띄는 별이고 북극성 근처에 있다 보니 옛사람들은 북두칠성이 신비로운 힘을 가진 신령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삼국유사』에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장군 김유신의 등에 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동사강목』에는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 왕건이 가장 아낀 부하 신숭겸의 왼쪽 발에 북두칠성 모양의 검은 사마귀가 있었다고 돼 있다. 『연려실기술』엔 고려의 마지막 충신으로 많은 선비의 존경을 받은 정몽주의 어깨 위에 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북두칠성이 이렇게 운명과 관련 깊은 별이라는 생각이 유행해서인지 사람들 사이에 북두칠성이 사람의 생명을 다스리는 별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중국에서 유행했던 전설 중 북두칠성의 신령이 바둑을 두고 있는 곳에 가서 그에게 부탁하면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한국에도 건너와 비슷한 전설을 낳았다.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시대에는 병에 걸리면 북두칠성을 향해 기도하고 빌면서 회복되기를 염원하는 사람이 꽤 많았던 것 같다. 북두칠성을 치료의 별로 생각한 셈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이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북두칠성에 기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엔 효를 워낙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부모가 병들었을 때 효심이 지극한 자식이 부모를 더 오래 살게 해 달라고 북두칠성에 간절히 빌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기록에 남아 있다. 윤지평 같은 유명한 사람이 그런 일화를 남겼다는 식의 기록도 있고, 아예 춘천에 사는 어느 김씨 부인이 그랬다더라 하는 식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 알려진 것도 있을 정도다.


조선 후기 무렵엔 불교 사찰 건물에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성각’이란 이름을 붙였다. 서울시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봉원사 칠성각’도 이에 해당한다. 출처=국가문화유산포털
조선 후기 무렵엔 불교 사찰 건물에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성각’이란 이름을 붙였다. 서울시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봉원사 칠성각’도 이에 해당한다. 출처=국가문화유산포털



북두칠성을 향해 기도하는 게 의식이나 행사로 발전하기도 했다. 무속인들이 굿을 할 때는 칠성님에게 드린다고 해서 북두칠성에 제물을 바치고, 북두칠성을 향해 노래 부르거나 춤춘 사례가 무척 많았다. 고려시대 작가인 이규보의 시 ‘노무편’엔 붉고 푸른 귀신 형상으로 북두칠성 그림을 그려 무당의 집 벽에 붙여 놓았다는 말이 나와 있다. 이를 보면 무속인들이 북두칠성을 칠성님으로 섬기는 풍습은 1000년 전 고려시대에 이미 그 핵심이 완성돼 있었던 것 같다.

조선 후기 무렵엔 절에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자신의 소원을 빌기 위해 북두칠성에도 기도하려는 사람이 많아져 아예 칠성각이란 이름으로 북두칠성에 기도를 올리는 건물이 등장하게 됐다. 서울시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봉원사 칠성각’이나 ‘진관사 칠성각’도 이에 해당한다. 원래 불교에서도 과거에 ‘치성광여래’라고 해서 북극성과 같은 별을 불교의 기도 대상으로 삼던 문화가 있었다. 조선 후기가 되면 북극성뿐 아니라 칠성탱, 칠성도라고 해서 북두칠성을 불교의 깨달음을 얻은 일곱 신령으로 여겨 칠성여래라는 모습으로 표현하는 예도 나타나게 된다. 이는 한국의 절에 있었던 독특한 문화다.

사실 북두칠성을 이루는 7개의 별은 늘어서 있는 형제처럼 가까이 모여 있는 건 아니다. 국자의 머리 부분부터 헤아렸을 때 4번째 별의 이름을 ‘메그레즈’라고 하고, 5번째 별을 ‘알리오스’라고 한다. 메그레즈와 알리오스, 두 별 사이의 거리는 대략 따져 봐도 200조 ㎞가 넘는다. 눈으로 봐서는 메그레즈와 알리오스가 그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국자 자루 모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메그레즈는 지구와 500조 ㎞ 조금 넘게 떨어져 있는 데 비해 알리오스는 지구에서 700조 ㎞ 넘는 거리에 떨어져 있다. 어느 별이 앞쪽으로 바짝 다가와 있는지, 어느 별이 뒤로 멀리 물러나 있는지 그 차이를 눈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우니 대충 가까워 보이는 것뿐이다.


국자의 머리 부분부터 헤아렸을 때 4번째 별의 이름을 ‘메그레즈’라고 하고, 5번째 별을 ‘알리오스’라고 한다. 사진 속 밝게 빛나는 별은 메그레즈다. 사진=위키백과
국자의 머리 부분부터 헤아렸을 때 4번째 별의 이름을 ‘메그레즈’라고 하고, 5번째 별을 ‘알리오스’라고 한다. 사진 속 밝게 빛나는 별은 메그레즈다. 사진=위키백과



북두칠성 전설 중 『고려사절요』에 실린 강감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별이 떨어진 곳에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가 거란족을 물리친 전쟁영웅 강감찬이었고 그 별이 북두칠성을 이루는 문곡성이었다는 것이다. 메그레즈는 문곡성의 요즘 이름으로, 그때 별이 떨어진 곳이 지금의 서울 지하철 낙성대역 인근이라고 한다. 낙성대역은 바로 북두칠성의 한 조각이 내려왔던 동네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고전문학, ‘관동별곡’에도 북두칠성이 언급돼 있다. ‘관동별곡’ 후반부를 보면 지은이 정철이 북두칠성을 들고 그것을 국자로 사용해 바다만큼 넘실거리는 술을 퍼서 온 세상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 준 뒤 세상을 다 취하게 만든 다음 그제야 다시 만나 또 한 잔 더 하자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야말로 문학의 호쾌한 상상력을 멋지게 드러내는 글귀다.

이 내용을 가만히 과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관동별곡’에 등장하는 상상력의 크기가 말 그대로 상상 이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실제로 북두칠성 크기의 국자를 만들어 한 번에 퍼담을 수 있는 술의 양이 얼마나 될지 계산해 본다면 어떨까?

북두칠성의 국자가 대충 정사각형 모양으로 생겼다고 보고, 별 사이의 거리가 200조 ㎞쯤이라고 치고 계산해 보면 그 용량은 ㏄ 단위로 해서 8 뒤에 0이 57개가 붙는 어마어마하게 큰 숫자가 나온다. 당연히 이는 지구의 바닷물 전체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대충 계산해 봐도 은하수의 모든 별마다 100억 명 정도의 외계인이 사는 행성이 하나씩 있다고 치고 은하수에 있는 그 모든 행성의 모든 외계인 종족 전원에게 매일같이 계속 3000㏄씩 술을 꼬박꼬박 나눠 준다고 하더라도 몇천억 년, 몇조 년에 걸쳐 반복하고도 거의 줄어든 티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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